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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여행탐방

독립운동가 천안 이동녕 선생 생가지│충청남도 기념물

by 태양빛 202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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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천안 이동녕 선생 생가지│충청남도 기념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충청남도 기념물인 독립운동가

천안 이동녕 선생 생가지는

2010년생가지 주변에

석오 이동녕 기념관이 개관되었는데요.

 

오늘은 독립운동가 천안 이동녕 선생 생가지와

이동녕 선생의 주요 독립 활동 사항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래 다음 내용을 통해 바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천안 이동녕 선생 생가지 개요 (위치 요금 문의 개관)

 

 

▪ 주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6(주차 가능)

▪ 문의 및 안내 :  041-521-3355

▪ 홈페이지 :  http://cheonan.grandculture.net

▪ 요금 : 무료

▪ 개관일 : 2010년 2월 23일

▪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 : 1989년 4월 20일

 

 

 

 

2.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

 

 

이동녕[1869~1940]은 천안 목천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석오(石吾), 자는 봉소(鳳所)이다.

1940년 72세 때 급성 폐렴으로 중국 쓰촨성 기강에서 순국할 때까지 독립 운동에 전 생애를 바쳤다.

 

이동녕 선생은 1904년(광무 8) 상동 청년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상설 등과 만주에 있는 용정촌으로 망명하여 서전서숙을 설립하였다.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고, 1910년에 만주로 건너가 이시영, 이강영 등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191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근업회를 조직하였고, 1919년에는 상해임시정부의 의정원 원장, 외무총장을 지냈다. 그 뒤 국무총리, 국무위원 주석을 겸무하다가 1928년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여 이사장이 되었으며, 1935년 한국국민당 간부로 활약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뒤 1939년 김구와 함께 전시 내각을 구성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싸우다가 중국 쓰촨성에서 생애를 마쳤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생가지 바로 옆에는 이동녕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3. 이동녕선생 생가지 건립 경위

 

 

이동녕선생생가지(李東寧先生生家址)는 2005년 12월 보수 및 정비가 완료되고, 생가 복원 사업이 이루어졌다.

 

더불어 우물, 포토 존[이동녕 선생 좌상] 등 구조물이 구성되었고, 생가에는 안방, 사랑채 등에 옛 가구 및 인물 모형이 전시되었다.

 

 

 

4. 이동녕 선생 생가지 형태

 

 

이동녕선생생가지는 부지 2,608㎡, 건물 면적 144.82㎡으로,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대문간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ㄷ’자 형을 이루고 있다.

 

ㄱ자형 안채는 팔작지붕인데 3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한 칸씩 있다. 안채의 좌우로 3칸씩 내어 방과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쪽을 향하고 있는 대문간채는 모두 5칸인데,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 칸씩 방을 두었다. 사랑채는 많이 변형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 생가 밖 오른쪽에는 우물과 이동녕 선생의 좌상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디지털천안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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