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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여행탐방

장충단 공원 헤이그 특사 이준 열사 동상

by 태양빛 2021.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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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 공원 헤이그 특사 이준 열사 동상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서울 중구에 있는 장충단 공원을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헤이그특사 이준 열사의 동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준 열사는 1907년 고종 황제로부터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알리도록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는 밀령을 받고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었고, 현지 언론들의 관심에 비해 열강들은 싸늘한 반응뿐이었다.

 

이에 분개한 이준 열사는 연일 통탄하다 의분을 이기지 못하고 할복 자결함으로써 세계만방에 대한 독립의 정신을 강렬하게 심어주었다.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덤덤하게 서 있는 모습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이 동상은 1964년 사단법인 일성회가 순국열사 이준의 숭고한 애국 충절을 기리기 위해 장충단공원 안에 건립한 동상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에 있다.

 

이준 열사는 1907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세계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비밀리에 고종을 만나 이 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해, 을사늑약이 고종의 의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거짓 조약임을 알려야 함을 건의해 동의를 얻었다.

 

그리하여 1907422일 서울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이상설과 합류하고,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이위종과 합류, 625일 헤이그에 도착했다.

 

세계평화회의 의장인 러시아 대표 넬리도프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하고 평화회의장에 공식적인 한국 대표로서 참석하려 했으나 이미 일본의 보호 속에 있는 국가는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정부 측과 만나려 했으나 그것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전후하여 열강들에게 무시당하는 한국 대표의 사정이 신문기자들에게 알려져 여러 신문에 나오고, 영국인 윌리엄 스테드가 회장인 국제협회의 후원을 얻어 회보인 쿠리에르 드 라 콩페랑스(Courrier de la Conférence)에 장서의 전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후 이위종이 국제협회에서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여 큰 호응을 얻고 연설 이후 각국 신문에서 일본의 무단폭력에 의한 조약을 보도해 힘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회의단 대표들은 대한제국 대표단을 외면했다. 노력을 해도 끝내 세계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이준 열사는 의분을 이기지 못하고 묵고 있던 호텔에서 할복 자결함으로써 714일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다.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고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으니 살아도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않고 잘 죽으면 오히려 영생한다.”

 

* 주요 약력

 

. 1859121일 함남 북청군 출생

. 1896년 독립협회 평의원

. 1904년 공진회 회장

. 1906년 비밀결사 신민회 조직

. 1907714일 헤이그에서 분사,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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