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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여행탐방

장충단 공원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독립 청원

by 태양빛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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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 공원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독립 청원 기념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서울 중구에 있는 장충단 공원을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는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유림 대표자 137인이 조선의 독립을 청원하는 서한(청원서)를 보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협회에서 1973년 세운 것입니다. 위치는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10(장충동2197)에 있다.

 

1919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 유림은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곽종석, 김복한을 비롯한 유림대표 137인이 서명과 함께 일제의 부당하고 잔혹한 한국 침략을 폭로하고 독립을 호소하는 2,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한국독립청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데 이것이 바로 파리장서이다.

 

 

파리장서에는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한국의 모든 계층과 사회 집단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알리는 내용도 있다.

 

이 독립청원서는 유림 대표 137명이 연서한 장서를 김창숙으로 하여금 상해로 가져가도록 하였고 이를 다시 파리에 머물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리인 김규식을 통하여 파리강화회의에 제출되었다.

 

청원서는 파리 강화회의 뿐만 아니라 각국 대표와 외국 공관, 국내 각지의 향교에도 배포되었다. 당시는 3·1운동이 서울에서 일어나 전국으로 퍼져나갈 무렵이어서 그 위세를 더욱 크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후 파리장서에 서명한 사람을 포함하여 여러 유교 지식인들이 일본 경찰의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장기간 갇힌 상태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고 징역을 살아 병을 얻어 옥중에서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를 1차 유림단 사건이라 부른다.

 

그러나 유림단 사건을 계기로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학자들로 이뤄진 유림계는 한말 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심산 김창숙은 유림 출신 민족운동가로, 일제 치하에서 파리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고 군정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군자금 모금 등 독립운동 추진하였다. 또 해방 후에는 남북 분단 반대, 독재와 부패 추방등 자유민주주의 수호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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